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매우 좋음 c i n e m a




스포일러 천지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2011)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각본 브리짓 오코너, 피터 스트로건

원작 존 르 카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출연 게리 올드만, 베네딕트 컴버배치,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존 허트, 토비 존스,

          키어런 하인즈, 데이빗 덴식, 톰 하디, 캐시 버크

 



 




















스마일리, 조지 스마일리

 

영국 비밀 정보국('서커스')요원인 조지 스마일리를 빼고 "팅커, 테일러솔저, 스파이"를 포함한 존 르 카레의 '칼라' 삼부작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중 BBC TV 시리즈로 각색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에서 알렉 기네스의 조지 스마일리는 심지어 원작의 스마일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겨, 스마일리는 곧 기네스라는 공식이 생겼다. 그런데 이 TV 시리즈보다 더 모호하지만 날카롭고, 더 차갑지만 감정의 깊이를 더 파고드는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게리 올드만의 조지 스마일리를 위한 영화, 즉 그의 이야기다.

 

언뜻 기네스의 스마일리와 올드만의 스마일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단색 위주의 오버코트와 알 큰 안경을 착용한 것 외에 별 특징이 없어 길가다 마주쳐도 지나치기 쉬운 외모에다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수사를 할 때 조용히 관련된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며 추리하는 작업방식도 마찬가지다. 과연 매력을 온몸에 휘감고 스피드 보트를 타며 적을 좇는 제임스 본드와는 정반대다. 해서 스마일리의 별명은 안티 제임스 본드다.

 

다만 기네스의 스마일리는 클로즈업으로 자주 표정 변화를 보이는데 비해, 올드만의 스마일리는 클로즈업으로 뒷모습을 자주 보이고, 그나마 그의 얼굴이 화면을 채울 때도 뒷모습을 보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 뒤통수든 얼굴이든, 올드만의 스마일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정보 차이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올드만의 스파이는 기네스의 스파이보다 더 과묵하고 의중을 알 수 없다. 한데 재밌는 점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올드만의 스마일리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등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개를 천천히 슬쩍 돌린다든지, 감정적으로 동요할 때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린다든지, 생각이 필요할 때 길을 걷거나 수영을 한다든지.

 

게다가 이야기 대부분이 스마일리 시점에서 진행된다. 이따금 중요한 장면이 스마일리를 보조하는 피터 길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인물의 플래시백조차 스마일리와 함께 대화할 때만 나온다. 영화는 스마일리 시점에서 문제해결 줄기를 따라가며 스마일리를 관찰하기도 한다. 그래서 올드만이 분한 스마일리의 행위와 동기가 이중간첩 색출이란 중심 사건에 종속되기보다, 그는 특정 시대특수 세계에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한 마디로 영화는 첩보물 외피를 쓴 스마일리 중심의 인물 연구에 가깝다. 이는 스마일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는 스마일리처럼 첩보계를 사는 주변 인물들 심리를 파고드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모자이크


이중간첩 색출, 이른바 '두더지 잡기'를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이야기 타래를 풀어가는 동시에 인물 탐구도 겸한다니. 관객은 물론 작가도 자칫하면 길 잃기 쉬운 설정이다. 여기다 사건 배경, 인물의 사정 및 심리 묘사를 위해 플래시백도 삽입하자니,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복잡한 구조에 암시 투성인 르 카레의 원작부터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데, 이를 두 시간 영상으로 압축해 중심을 잃지 않는 이야기를 구축한다니불가능한 소리 같다.

 

그런데 브리짓 오코너와 피터 스트로건은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작은 조각들로 토막낸 후 재조합해, 원작이나 TV 시리즈와 차별되며 영화 매체에 적합한 서사 구조를 만들었다. 원작/TV 시리즈와 달리영화는 정보국 내 권력 이동을 한 눈에 보여주는 수미상관 구조를 취하고, 인물 간 관계를 함축하며 음울한 현재(영화상)와 대비되는 좋았던 한때를 나타내는 크리스마스 파티 플래시백을 포함한다. 큰 그림을 따지면 이렇다. ‘두더지 잡기라는 큰 이야기 줄기가, ()정보국장 컨트롤의 사퇴 계기가 된 테스티파이(Testify) 작전과 라이벌인 퍼시 앨러라인을 새 정보국장으로 앉히는 위치크래프트(Witchcraft) 작전과 맞물려 이어진다.

 

이렇게 재배열된 영화상 서사는 다시 몇 개의 덩어리로 나뉘는데, 각 덩어리는 얼추 스마일리의 수사 전개 단계이기도 하고 나름 주제를 가지기도 한다. , 테스티파이 작전 실패와 서커스 내 기성세대(컨트롤, 스마일리)의 퇴장정보를 가진 리키 타르의 등장과 스마일리의 수사 시작스마일리와 길럼의 수사 진행타르가 정보를 얻게 된 사연과 스마일리와 길럼의 사적인 이면계속되는 수사덫을 놓는 스마일리와 위치크래프트와 이중간첩의 정체스마일리의 서커스 복귀로 나눌 수 있다. 임의적이긴 하지만.

 

그런데 여기에 위치크래프트를 소개하는 장면과 앞서 말한 크리스마스파티 장면이 플래시백으로 들어가고, 중간중간 위치크래프트의 양면을 보여주는 장면도 삽입되기 때문에, 영화는 정갈한 틀 속에 비선형적 서사를 갖춘다. 이제 중요한 건, 그렇게 사이사이에 배치된 여러 삽입 장면이 '두더지 잡기' 메인 플롯에 어떻게 녹아드느냐다.


 

 


















단서

 

일정한 구조를 갖춘 이 모자이크식 서사에 리듬을 부여하고 흐름을 해치지 않기 위해장면전환을 알리는 여러 가지 큐(cue) 또는 단서가 반복적으로 쓰인다풀어야 할 게 많은 서사에 반복이라니. 대담하기 짝이 없다. 영화는 장면전환 뿐 아니라, 유사 구도나 장면을 반복해 규칙적이면서 조금씩 엇나간 이중적인 리듬을 연출하고, 특정 단서를 강조해 관객이 이야기 끈을 놓지 않도록 한다.

 

가장 중요한 단서는 다름 아닌 영화 제목이다. 영국 동요 "팅커 테일러"에서 따온 팅커, 테일러, 솔저, 푸어맨, 배거맨은 각각 컨트롤이 제시한 용의자를 가리킨다. 팅커는 퍼시 앨러라인, 테일러 빌 헤이든, 솔저 로이 블랜드, 푸어맨 토비 에스터헤이지그리고 배거맨 조지 스마일리. 컨트롤은 이들 사진을 각각 다른 체스 말에 붙여 넣는다캐슬은 퍼시 앨러라인, 비숍은 빌 헤이든. 그리고 블랙퀸 조지 스마일리. 이후 스마일리 책상 위에 스마일리의 네메시스 '칼라'의 이름이 붙여진 화이트퀸이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좀 더 나중에 스마일리는 또 다른 비숍에 러시아 수행원인 폴리야코프의 사진을 붙인다. 이렇게 체스 말을 짧게 반복, 삽입하여 용의자에 대한 단서를 강조한다.      

 

또 컨트롤의 명으로 부다페스트에 갔다가 총 맞고 쓰러진 짐 프리도의 모습은 어떤가.그의 쓰러진 모습은 오프닝 시퀀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이는 스마일리가 프리도를 언급하거나 이후 프리도 본인이 등장하기 직전에 총소리와 함께 반복된다. 게다가 이 장면은 이중간첩의 말로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그 외에 '두더지'가 진짜 정보보물를 폴리야코프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나오기 전마다, 파일 담긴 승강기가 올라가는 쇼트와 개 짖는 소리가 단서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플래시백 전환도 스마일리 시점에서 혹은 스마일리와 이야기하는 인물 시점에서 이루어져 혼란을 방지한다. 이때 과거와 현재는 스마일리의 다른 안경만으로도 쉽게 구분된다. 이렇듯 삽입 장면은 많지만, 반복적이고 일관된 큐로 장면 사이가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팅커 테일러>에서 장면 반복은 관객에게 이야기 흐름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리듬을 만들고 별다른 대사 없이도 스마일리를 묘사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중간 중간 짧게 몇 번 들어가는 스마일리의 걷는 장면과 수영하는 장면스마일리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 장면들, 올드만이 만들어 낸 스마일리의 매너리즘 등은 일정한 패턴을 이루면서 스마일리에 대한 정보의 깊이를 더하는 셈이다. 특정 단서의 반복적인 등장은 일정한 리듬 뿐 아니라, 점증적 리듬을 연출하기도 한다. 리키 타르의 녹음된 목소리가 일례다. “서커스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전부 똥에 불과해 (Everything the Circus thinks is gold is shit).” 이 대사는 영화 중반에 스마일리, 길럼, 타르 등이 모인 곳에서 배경의 일부로 흐릿하게 들린다. 그러다 스마일리가 위치크래프트의 정체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또렷하고 크게 반복된다.

 

영화의 리듬에 기여하는 건 촬영 방식도 마찬가지다. 언뜻 전반적으로 정적인 영화지만, 그렇다고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장면은 집중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흡사 뱀처럼 인물에 서서히 미끄러지듯 피사체에 근접(push-in)/줌인하거나, 클로즈업한 인물에서 천천히 멀어지거나, 아니면 인물의 움직임이나 인물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팬하거나 트래킹한다. 미끄러지듯 느리게 뒤로 당기거나 줌인하는 카메라 움직임으로 리듬은 물론 긴장을 자아낸다. 거의 매 장면에서 이 스파이들이 살던 때를 상기하기라도 하듯 줌의 반복이다그러면서도 정지된 화면에서 초점 이동이라든지, 같은 장소의 경우 앵글 변화로 지리한 반복을 피한다. 가령, 서커스의 고위 간부들이 소개되는 장면이나스마일리 시점에서 용의자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스쳐가는 장면이 그렇다. 또 초반 서커스의 설정 쇼트가 로우 앵글에서 줌인된다면, 이후 서커스를 비출 때는 조감 쇼트로 내려다 보는 식이다.

 

이러한 특정 장면 또는 소리를 통한 매끄러운 연결이나 카메라 움직임의 리듬 외에불필요한 대사 생략 또한 각색과 편집의 효율성을 더한다. 보통 여러 겹의 서사는 설명적 대사로 점철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기엔 스마일리의 모놀로그나 플래시백 정도를 빼면 대사가 많지 않다적지만 그 쓰임이 매우 경제적이다. 예를 들어, 오프닝 크레딧 다음에 나오는 시퀀스는 올리버 레이컨, 리키 타, 피터 길럼 등 주요 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사건 발단을 알린다. 이 시퀀스는 짧지만 효율적인 대사로 깔끔히 구성돼 있다. , 간첩 정보를 가지고 있는 타르가 정부 관료인 레이컨에게 전화해 자신의 상사인 길럼을 언급하면, 카메라는 바로 정보국으로 향하는 길럼으로 커트한다이후 길럼은 레이컨의 전화를 받는데, 이때 간첩 설명은 되풀이되지 않고 레이컨의 목소리는 배경으로 처리된다. 그 직후 집에 있는 스마일리로 커트해, 다른 불필요한 장면이나 설명 없이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린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길럼과 스마일리가 레이컨에게 가는 식이다. 그 외에 부다페스트, 이스탄불파리 등 다양한 장소를 소개할 때도, 불필요한 자막 대신 이전 장면에서 해당 장소를 언급하거나 배경 소리 등으로 단서를 제공한다.


 




















흐린 가을

 

영화는 컨트롤이 짐 프리도에게 이중간첩의 존재를 알리는 장면과,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부다페스트에 간 프리도의 장면이 교차되며 시작된다. 컨트롤이 '썩은 사과'와 '보물'을 언급하고 이어지는 장면은, 구름에 잠겨 우중충하고 단조로운 갈색 지붕으로 가득한 부다페스트 전경이다. 그리고 바로 카메라가 뒤로 미끄러지며 웃는 아이들의 역광 실루엣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서커스 내부도 모노톤 그 자체다. 카메라가 서커스를 떠나는 컨트롤과 스마일리를 따라 체크무늬 방음벽의 회의실을 나오면, 낮은 천정 아래 촘촘히 배치된 책상과 무채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아래층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이윽고 문을 나서면우중충한 런던 거리다. 그 후 교차되는 새로운 서커스의 일상과 은퇴한 스마일리의 일상도 비슷한 색으로 일관된다. 그리고 카메라는 인적이 뜸하고 안개가 잔뜩 낀 거리를 걷는 스마일리를 담는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조지 스마일리의 이야기다그래서인지 영화 내내 깔린 차갑고 부연 공기가 스마일리로 체현된 것처럼 느껴진다. 매 장면마다 슬그머니 다가가 천천히 수평 방향으로 그 장면을 훑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스마일리의 그것처럼 보인다. 매 장면을 지배하는 단조로움과 단색은 스마일리가 입는 옷에도 나타난다. 매 프레임의 일부를 구성하는 모호하고 불투명한 이미지들과 격자를 연상시키고 편집증적으로 질서적인 이미지들은 스마일리가 몸담은 첩보계를 암시하기도 한다꿰뚫어볼 수 없는 스파이들, 형체 없는 보물과 쭉정이, 그런 쭉정이에 사활을 거는 야심가, 그리고 허식과 부패로 대변되는 관료주의적 조직 생리 등그래서 이 영화는 스파이들과 그들이 사는 세계를 잠식한 흐린 공기와 앞서 말한 이미지들이 함께 유기적으로 일궈낸 감각적 경험의 총체다.


 













배신

 

서커스, 나아가 런던을 감도는 냉담하고 권태로운 분위기는 어떤가. 영화 속 첩보계는 TV 시리즈보다 더 냉혹하다토마스 알프레드슨이 재현한 서커스는 TV 시리즈의 서커스보다 더 폐쇄적이고 건조하다가령 서커스의 회의실엔 바깥 소음이 들리기는커녕 창문 하나 없다. 곧 살인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밀실과 같다. 이 삭막함과 냉혹함의 근원은 무엇이고, 영화 속 스마일리가 회상하는 '좋았던 그때'는 언제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런데 이중간첩의 정체가 밝혀지기도 전에, 스마일리가 두 번째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떠올릴 때 즈음 그 좋았던 날마저 거짓으로 드러난다. 칼라를 만났던 일에 대한 스마일리의 모놀로그와 후반 이중간첩의 고백에 따르면, 그의 아내 앤의 존재는 그의 약점이기도 하다스마일리의 전 동료였던 코니 삭스가 더럽히고 싶지 않은 좋았던 그때는 이미 스마일리에겐 아내와 친구의 배신으로 얼룩졌던 것이다. 그런데 서커스의 좋았던 시절 그대로 기억하고 싶어 하는 코니 삭스도 충성을 다했던 조직으로부터 해고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컨트롤은 라이벌인 퍼시 앨러라인과 수배자 신세에서 구해 줬던 토비 에스터헤이지 등에게 배신당한다.

 

피터 길럼도 예외는 아니다. 두더지를 덮었던 그림자가 걷힐 때동료로 여기던 자가 이중간첩이란 사실에 믿을 수 없다는 길럼의 표정이 화면을 채운다. 이 안티클라이맥스적인 클라이맥스에서, 카메라는 스마일리가 아닌 길럼의 시점을 따른다. 스마일리의 경우, 그가 폴리야코프 사진을 이중간첩과 같은 체스 말에 붙였을 때 이미 어렴풋이 간첩이 누군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러면 리키 타르는서커스 내 가장 낮은 서열에 자리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조직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만, 결국 변절자란 딱지가 붙어 도망이나 다니는 신세다. 마지막으로 말할 것도 없이친구이자 연인의 배신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짐 프리도. 그가 가진 배신감은 죽을때까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마일리가 이중간첩을 찾아간 장면에서, 영화는 그 누구보다 먼저, 또 가장 오래도록 배신감에 사로잡힌 이는 다름 아닌, 간첩 본인임을 암시한다. 원작 소설과 TV 시리즈에서 빌 헤이든은 구구절절 변절의 이유를 설명한다. 그렇지만 영화 속 헤이든은 한 두 마디만 내뱉는다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했고, 그건 도덕적인 선택이기도 했지만 미적인 선택이기도 했다고 말이다. “서구는 이제 너무 추해졌어.” 아티스트이기도 한 헤이든을 무엇보다 잘 나타내는 한 마디다. 자신이 굳게 믿던 이념, 그리고 그 이념 하에 지구 반대편에서 학살을 일삼는 체제의 모순, 그 간극에 빌 헤이든은 배신감을 가졌던 걸까상기했듯 영화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늘어놓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짧은 마지막 한 두마디는 그가 변절한 이유를 효과적으로 함축한다.   

 

오프닝 크레딧을 마무리하는 쇼트에서 벽에 걸린 그림을 지긋이 바라보던 스마일리를 상기해 보자액자 속 화면을 빈틈없이 채운 직사각형들. 카메라는 처음에 그림 위에 머물렀다가 점차 뒤로 물러나며 이를 바라보는 스마일리의 뒷모습을 드러낸다. 이 그림은 나중에 스마일리의 플래시백에서 드러나듯, 헤이든이 앤에게 주려고 놓고 간 추상화다. 이처럼 영화는 이중간첩에 대한 단서와 복선을 찬찬히 못질하듯 반복한다.

 

아마 냉전 시대의 비밀 정보국은 알프레드슨이 표현하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삭막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서커스 바깥 세상도 저렇게까지 냉랭하고 건조하고 텁텁하지 않았을 것이다원작에는 비틀린 유머가 짙게 깔려 있고 TV 시리즈 속 서커스도 복작거리는 사거리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그렇지만 두 시간짜리 영화로 모든 이야기를 압축하면서, 알프레드슨은 스마일리를 비롯한 스파이들과 그들의 관계 저변에 깔린 정서이중성과 배신를 흐린 가을과 숨막히는 분위기로 표면화하는 데 집중한다.


 



















다시, 스마일리

 

반복컨대 <팅커 테일러>는 스마일리의 영화다. 원작이나 TV 시리즈보다 더 스마일리의 시점을 강조한다. 길럼의 시점을 따르는 부분이나 짐 프리도가 나오는 부분 정도만 제외하면, 대부분 스마일리 혼자 추리하고 과거를 회상하거나 스마일리와 다른 이가 함께 한 자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등 카메라가 스마일리와 함께 사건을 따라가거나 스마일리를 관찰하는 식이다. 원작이나 TV 시리즈보다 더 스마일리에 집중하기 위해, 오코너와 스트로건은 리키 타르가 간첩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 설명하는 부분을 스마일리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도록 각색했다. 토비 에스터헤이지로부터 위치크래프트가 몰래 진행되는 장소를 알아낼 때도, 스마일리와 토비가 일대일로 대면한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카메라는 타르나 에스터헤이지를 유심히 바라보는 스마일리에 머물곤 한다.

 

특히 스마일리의 모놀로그는 영화가 TV 시리즈보다 스마일리 시점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음을 잘 나타낸다.  TV 시리즈에서는 스마일리가 칼라와 대면하는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넣는다. 영화의 경우이미 플래시백이 꽤 들어갔기 때문에 더 이상의 회상 장면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구조상 이유도 있겠지만, 스마일리가 칼라에게 변절하라고 설득했던 과거를 모놀로그로 처리한것은 스마일리 시점을 강조하는 영화의 목적에도 부합한다.

 

엄격하게 따지면 모놀로그라기보다 스마일리가 길럼에게 털어놓는 식이다. 그렇지만 원작이나 TV 시리즈와는 달리, 길럼은 스마일리와 좀 떨어진 곳에 앉고대신 테이블 너머 스마일리를 마주하는 것은 빈 의자다. 여기서 카메라는 빈 자리와 스마일리를 한 프레임에 넣어 칼라의 존재를 강조한다. 그런데 심문 당시 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데다스마일리는 칼라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비어 있는 것 같지만 너무나 명백히 실재하는 자신의 적, 반대편의 이념광이자 자신의 얼터 에고이기도 한 이중적인 칼라를, 스마일리를 마주한 빈 자리만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아내 앤 또한 뒷모습이나 흐릿한 배경으로 처리된다. 예를 들어스마일리가 앤의 배신을 떠올릴 때도 관객은 스마일리의 눈을 따른다. 아내와 친구의 배신을 납득하기 어려운 스마일리의 심정은 카메라가 배신자들의 얼굴을 비추지 않는 것으로 대변된다. 게다가 앤이 나오는 플래시백도 코니 삭스가 앤을 언급하고 나서야 나온다. 스마일리에게 칼라나 앤(의 배신)은 각각 그가 충성하는 체제의 약점과 그의 개인적인 약점을 상징하므로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이 긴 여정은 결국 스마일리의 승리로 끝나는 듯하다. 두더지도 잡았고, 앤도 돌아왔고, 서커스에도 복귀하니 말이다그렇지만 컨트롤의 죽음, 돌이킬 수 없는 동료의 배신과 죽음 뒤에 스마일리가 정말 마지막에 웃는 자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서커스, 정확히는 컨트롤의 자리로 돌아온 스마일리를 반기는 것은 아무도 없는 서커스 회의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취해 웃던 시절에 들었던 노래의 말미를 장식하는 공허한 박수갈채다.

   


     


드라이브 Drive (2011) 라이언 고슬링 만세 c i n e m a



드라이브 Drive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각본  호세인 아미니

출연  라이언 고슬링, 캐리 멀리건, 알버트 브룩스, 브라이언 크랜스톤, 오스카 아이작, 론 펄먼, 크리스티나 헨드릭스



영화 내용 있음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이것이 아트하우스다라고 뽐내고 싶어했든, 본인 말마따나 그림형제 동화처럼 만들고 싶어했든, <드라이브>는 극도의 로맨티시즘과 폭력을 뒤섞고 느와르 관습으로 치장한, 어이없고 흥미로운 엔터테인먼트다. 여기에 무명의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실존주의 장식도 곁들여 있다. 드라이버라고 불리는 이 주인공은, 전갈 무늬가 새겨진 보머자켓, 가죽 장갑, 선글라스로 멋낸 후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거리를 질주하거나 활보하는, 속된 말로 온몸에 간지가 좔좔 흐르는 인물이다. 그가 운전대를 잡으면 못하는 일이 없다. 돈 벌 때도 그렇지만, 갱단으로부터 연인--아이린--을 구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운전대 뿐 아니라 메카닉답게 온갖 연장도 자유자재로 다룬다. 생계와 상관 없지만, 총 쏘는 것도 수준급이다. 맨몸으로 싸우는 것도 문제 없다. 칼부림에 피를 아무리 흘려도 죽지 않을 것 같다. 이 정도면 거의 수퍼히어로다.

 

영화는 극적인 로맨티시즘과 폭력을 병치해 아연과 탄성을 자아낸다. 함축적이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엘리베이터 장면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드라이버는 적의 머리통을 무참히 짓밟는다. 깨진 수박처럼 널부러진 머리의 잔재는 비현실적으로 징그러워 역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이 장면은 드라이버가 아이린에게 키스한 후에 나와 그 잔혹성이 두드러지는데, 직전의 키스 장면도 실소가 나올 정도로 이질적이고 지나치게 로맨틱하다. 두 사람은 갑자기 부드러워진 엘리베이터 조명 아래 시간이 잠시 멈춘 듯 슬로모션으로 입맞춘다. 이렇게 영화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면과 가장 잔인한 장면이 번갈아 지나가자, 엘리베이터 문을 사이에 두고 떨어진 드라이버와 아이린은 마침내 둘이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두 인물의 안타까운 사랑에 감정이입해야 할 이 상징적인 장면은 굉장히 작위적이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란 주제의 화보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영화는 애초 관객이 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두지 않는다. 드라이버와 아이린이 말없이 서로를 빤히 바라보는 장면, 슬로모션 남용, 별 의미 없는 유혈 낭자 등 이 영화는 관객을 배려할 의도가 별로 없다. <드라이브>는 되레 드라이버나 아이린, 인물 각자를 위한 이야기다. 아이린에게 드라이버는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 탈출구를 마련해 줄 영웅이고, 드라이버는 차를 모는 것 외에 자신을 정의할 개인사나 특징 따위 없이 무의미하게 살던 차에 아이린을 만나 그의 영웅을 자처한다.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소외와 공허, 자기 연민에 젖은 이들이 서로에 의존해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자각한다는 실존주의스러움은 거울과 응시라는 뻔한 모티프로 강조된다. 남편은 감옥에 있고, 웨이트레스로 생계유지하며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아이린에게 무명의 드라이버는 백마 탄 왕자님이고, 위험에 처한 연인을 구하려고 살인을 감행하는 드라이버는 스스로를 멋들어진 액션영화 주인공으로 미화시킨다. 그래서 영화는 아이린에게는 그런 왕자님이 나오는 동화고, 드라이버에게는 지켜야 할 연인과 무찔러야 할 악당이 있는 액션영화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오프닝 추격 시퀀스는 드라이버가 만들어 낸 하나의 완성된 영화처럼 보인다. 이 시퀀스는 고객이 누구든 탈주 돕는 것을 밤일로 하는 드라이버를 소개하는 기능도 하지만, 탈주 계획, 탈주, 탈주 성공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이야기로서의 구색을 갖추기도 한다. 드라이버가 멋지게 주연하는 오프닝 뿐 아니라, 중간의 총격전, 엘리베이터, 주요 악당을 죽이는 장면, 심지어 마지막에 최종 보스급인 갱스터와 대면하는 장면까지, 순전히 그의 상상 속에 일어나는 일처럼 지극히 드라마적이고 낭만적이다. 또 80년대 감성과 로스 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네오 느와르 분위기를 담아내고 싶었다던 레픈의 의도에 따라, 영화는 장르 관습을 차용하고 수십 년 전 스릴러들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섞은 패치워크처럼 보일 뿐 아니라, 핫핑크의 타이틀 시퀀스부터 전반적으로 고채도 원색, 신스팝으로 점철돼 센티멘털리즘으로 가득하다.

 

황당한 구석이 많지만 레픈의 감성에 속는 셈치고 그가 제공하는 센티멘털한 분위기를 즐긴다면, <드라이브>는 충분히 재밌고 흥미로운 드라마다. 주어진 인물의 제한적인 특징을 잘 살린 배우진도 영화의 장점이다. 아이린을 연기한 캐리 멀리건은 물론, 짧은 출연에도 아이린의 무능력한 남편을 연기한 오스카 아이작도 주목할 만하다. 대놓고 무조건 나쁜 악당 관성에 기대지 않으려는 알버트 브룩스의 연기도 좋다. 그렇지만 라이언 고슬링이야말로 <드라이브>의 주축이다. 드라이버는 태생적으로 깊이가 있거나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은 인물이지만, 라이언 고슬링은 절제된 표정 연기로 연인을 바라볼 때의 부드러움과 적의 머리통을 으깰 때의 잔인함 사이를 능숙히 오간다.

 

  



헬프 The Help (2011) 적당히 재밌음 c i n e m a


 

헬프  The Help

감독  테이트 테일러

각본  테이트 테일러

원작  캐스린 스토킷

출연  엠마 스톤, 바이올라 데이비스,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옥타비아 스펜서, 제시카 차스테인


세 번째, 네 번째 문단에 스포일러 

 

 

<헬프>의 줄거리를 처음 접하고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이야기의 틀이었다. ,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초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사회적 강자인 백인이 약자인 흑인의 억눌린 목소리를 대변하는 설정 말이다. 영화의 제목인 헬프는 원래 부유한 백인에게 고용된 흑인 하녀들을 총칭하지만, 주인공인 스키터(엠마 스톤)가 에이블린(바이올라 데이비스)을 필두로 하녀들의 사연을 글로 옮기고 이를 출판하면서 나중엔 스키터의 도움을 의미한다. 이러한 설정은 원작자와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민권운동의 흐름 자체가 자칫 흑인을 위한 백인의 개인적인 시혜 행위로 환원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배경은 다르지만 2009년작 <블라인드 사이드>도 이러한 틀에 끼워진 내러티브를 가지는데, 이 영화의 더 큰 문제는 흑인 주인공(마이클 오어; 퀸튼 아론)이 제대로 발달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러티브는 백인인 또 다른 주인공(리 앤 투이; 산드라 불록)의 인물 변화에 쏠리고, 카메라는 오어를 바라보는 투이의 모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또 투이가 지인들과 만나는 장면처럼, 투이의 환경이 어떻다를 암시하는 데 공을 들인 반면, 오어에 관한 정보의 깊이는 매우 얕다. 더욱이 <헬프>에서 나오는 흑인 수와 비교하면, 이는 더욱 관대하게 넘어가기 힘들다  

 

<헬프>의 갈등은 악의 축인 백인 여성들(대표적으로 힐리;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이 민권운동 확산과 기득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 반, 학습돼 온 인종적 멸시 반으로 차별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로부터 불거진다. 그 예로, 위생상 이유를 들어 하녀용 화장실을 집 밖에 설치하는 것이다. 이를 지켜본 스키터는 또래 집단에 염증을 느끼고 차별의 진상을 고발하고자 하녀들을 설득한다. 여기에 결혼 대신 독립을 갈구하며 당시 여성관에 반발하는 스키터의 다른 면면들도 맞물린다. 게다가 자신을 길러줬던 하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도 플래시백으로 그려진다. 마침내 하녀들의 사연을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스키터는 그토록 원하던 직장을 얻게 된다. 스키터 뿐 아니라 작업에 동참한 하녀들도 성공의 희열을 누린다. 얼핏 모두가 행복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결말이다.

 

그렇지만 스키터와 달리, 하녀들의 현실은 뉴욕행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그런 달달한 환상으로 귀결됐다면, 이빨 사이에 낀 엿처럼 찝찝함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도 하녀들의 이야기가 결국 스키터의 인물 변화에 종속된다는 찝찝함을 해소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애초 상대방의 문제 해결을 위한 매개체던 스키터가, 결국 상대방을 매개체로 삼아 창작 과정을 통해 직간접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개인적인 목적도 이룬다.

 

상기 설정 외에 다른 문제는 다소 일차원적인 인물 묘사다. 특히 영화의 주 악역인 힐리는 캐리커처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 에이블린과 대면하는 장면에서 감정의 깊이를 아주 잠시 드러내나, 전반적으로 힐리는 왜 저렇게 악을 쓰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단순한 인물이다. 힐리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스키터를 길러준 하녀 콘스탄틴을 묘사하는 방식도 단선적이다. 콘스탄틴은 그야말로 스키터의 노스탤지어를 환기하는 도구적 인물이자 스키터 가족의 죄책감과 동정의 대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저런 불만에도, 원작자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단정하고 해석하기도 어렵다.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면, 그건 관객의 몫이고 이를 놓고 시비를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영화는 눈물을 자아낼 만한 요소로 가득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주어진 인물의 한계를 넘는 수준이다. 또 힐리 등의 기득권에 대한 불안과 그 발현인 차별이 흑인 하녀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례로, 외부인 백인이자 미니(옥타비아 스펜서)의 새 고용인인 실리아(제시카 차스테인)도 차별과 편견의 피해자다. 물론 실리아가 미니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백인의 시혜적 태도를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낸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는 미니 또한 실리아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실리아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전개로 어느 정도 변명의 여지를 남겨 둔다.

 

<헬프> 나쁜 영화라는 소리는 아니다. 좋고 나쁨의 정의가 애매모호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의도는 좋은데 그에 따른 이상적인 결과물이 아닐 따름이다. 그 때의 현실을 밝은 분위기로 그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사회적 소수와 차별을 다루는 드라마인데, 악당 뿐 아니라 영웅마저 사회적 주류에 속하고, 정작 진짜 주인공이 되어야 할 이들이 중간에 끼는 도식이 그려진다면, 조금은 불공평한 이야기 아닐까?

 

다행히 영화는 에이블린으로 시작하고 막을 내려 진정한 주인공은 스키터이자 에이블린이기도 하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 속 여느 흑인과 달리, 에이블린과 미니는 가족사가 있고, 다른 인물들과 관계하며,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상대적으로 입체적이고 살아있는 인물들이다. 여기엔 배우들의 공이 크다.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절제된 감정 연기는 옥타비아 스펜서의 역동적인 성격과 대조되어, 두 배우의 호흡이 영화의 드라마와 코미디 균형을 맞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 엠마 스톤은 미성숙과 성숙을 동시에 지닌 스키터를 설득력있게 연기한다. 활발하지만 여린 실리아로 분한 제시카 차스테인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짧은 출연에도 가장 큰 웃음을 주는 씨씨 스페이섹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헬프>가 주는 감동을 거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이올라 데이비스다.

 

 







 

 

 


imaginary tourist friend z u z e o r i


I was just sitting there. In front of a Starbucks store in the middle of laughter and chatter swooping upon me from passing human traffic. Drinking a Grande Americano. If these three shots of espresso could help me stay awake I guess I’d be able to do some more touring downtown. This city at night was just gorgeous. At midnight pubs were still bright with colourful lights and cigarette smoke wafting from within.

 

I was just waiting for a tourist friend to come back and join me. He was off for a couple of minutes getting a drink from Seven Eleven. He said, I don’t like coffee, watching me ordering this Grande Americano. My intention hitting the Starbucks was to get a Venti Americano with four shots of espresso. Being touristy took me cups of coffee. Being touristy with him, especially, cost me a few times of holding my short temper.

 

We had walked for three hours. Starting from the Harbourfront, zigzagging through the hubbub of the city, popping in these and those stores, stopping by Tim Hortons for quick breaks, squeezing our way through the shoppers at Eaten Centre, standing by while waiting for the friend to have his fill of shopping, I needed the amount of coffee that allowed me to suppress impatience and force out a smile.

 

I hadn’t had visitors for a long time, needed a dose of human contact, someone to talk to over coffee and wine about my mundane daily routines. Then it was last winter this friend e-mailed me announcing his plans to vacation in Toronto. I feigned excitement in the hopes that, perhaps, his visit could save me from the ennui that had beaten me down to the most miserable possible state.

 

I needed his visit. Needed it to assure me of better days ahead. A fresh breath of air, that was all I needed, I reasoned. With that I could, maybe, bounce back. Back to the excitement of life. All the pleasures that life could ever offer me. Films with brain-twisting stories and scintillating scenes had failed me. Representations of reality, real people, and real events had failed to lure me into their fantasies. The actual forms of human contact, maybe, maybe, could resolve whatever had plagued me for so… Long.

 

I was wrong.



 

 


A hysterical woman....2 z u z e o r i



A hysterical woman number two

 

The day I parted ways with her all I tried to do was reason with her, convince her why we should go our ways and never see each other again. When we were together she was willing to give me props when I, as a struggling artist, was about to ditch my artistic endeavors and pack things and return to my hometown. She gave me all the strength that I needed every time I faced artist’s block. Although she frequently annoyed me by finding fault with my works and presenting suggestions (how funny is that!), I put up with all that because, after all, she was the most supportive and lovable person in my life. That said, I ran out of patience when she said one of my expressionist works was not expressive at all but it was just all banal and mundane like the factory made chocolate milk I had the habit of drinking each morning I woke up. I flung my brush to the floor and kicked the stool I had been sitting on in her direction. She jumped and started yelling, I’ve complimented your pieces of shit since your eyes begged for compliments, you pathetic incompetent bitch. She must have seen my whole body shaking in exasperation, which somehow egged her on to push further and throw every kind of insult at me. I’ve seen enough of your junk, expressionist, my ass, you are just one of those devoid of any kind of artistic talent, ha ha, sucker! You don’t like getting criticized? Ha ha, you know what? If you thought my little suggestions constituted some sort of criticism, you should get your ass out there and hear what ordinary people have to say about your piece of shit. It’d be most fortunate if you just have a few eggs thrown at that mess of yours. It was there I figured enough was enough. I pitched my palette at her which successfully struck her in the forehead. I walked to her who started groaning and made her sit on the floor before me, face to face, and said, Listen, I knew it all along that you’re helplessly ignorant and unappreciative of art, and you know, ignorance is irredeemable and I’ve never made any attempt to lecture you what I am doing, why I am doing this and whatnot, but… this hysteric insulting really pushed you, and perhaps me too, over the edge, so it’d be very, very depressing news for you to swallow, but I think we need to call it quits. Our engagement, your dreams of becoming a consummate artist’s spouse, all over now. She looked at me dumbfounded and I waited awhile for the breakup to sink in. Don’t recall it wasn’t until minutes passed or was it hours that she finally piped up. Asshole. Then she struggled to her feet, kicked the poor stool of mine, and exited my studio, and of course my life, forever, slamming the door shut. From the outside came a bout of crying, cursing, throwing, kicking… oh what a hysterical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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